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왕의 난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八王之亂 [[중국어]]: 八王之乱(bāwángzhīluàn) [[서진]]의 2대 황제 [[혜제(서진)|혜제]] 재위기(291~307) 황후 [[가남풍]]이 외척 [[양준(서진)|양준]]을 제거하고자 [[사마량]], [[사마위]] 등 사마씨의 사람들을 이용한 후 권력을 잡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반발한 8명의 왕이 반란을 일으켜 내전을 벌인 사건이다. 내란을 주도한 종실제왕(宗室諸王)[* 왕으로 봉해진 황족들]이 모두 8명이라고 해서 '''팔왕의 난'''이라 일컫지만, 이는 사실 황실의 문제만이 아니라 후한 말기부터 쌓여온 고대 중국의 사회 모순 전반이 터져나온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.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히 황실 안에서의 제위 다툼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에 따른 거대문벌에 대한 중소문벌의 공격,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공격이라는 성격도 동반한 것이었다.[* 중앙에 대한 지방의 대대적인 역습으로 사실상 나라가 작살났다는 점에서 팔왕의 난은 후한 말 [[반동탁연합|반동탁연합군의 동탁 토벌전]]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.] 다만 이런 사회적 불만은 근본적으로 중앙정권이 이 전란으로 인해 무너지지만 않았다면 이렇데 단기간에 터지지도 않았을 문제들이라 근본적으로는 내란에 몰두한 하내 사마씨 씨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. 이 사건의 결과 서진의 [[국가 막장 테크]]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고, 이어진 [[영가의 난]]에서 서진은 [[남북조시대|한족 왕조 최초로 본거지인 중원을 잃고 강남으로 쫓겨난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